제목 : 마루 밑 아리에티

개봉 : 2010년 9월

감독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출연 : 시다 미라이, 카미키 류노스케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

마루 밑 아리에티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으로 많이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으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감독을 맡았다. 원작은 영국의 동화작가 메리 노튼의 'The Borrowers'라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마루 밑 바로우어즈'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영화의 원제 역시 「借りぐらしの アリエッティ」로 번역하자면 '남의 것을 빌려 사는 아리에티'라는 뜻이다. 2011년 제34회 일본 아카데미상(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다. 

 

 

줄거리

아리에티는 책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10cm의 작은 몸집을 가진 소인족이다. 인간의 집 아래에 거주하는 그들은 인간의 물건들을 아주 조금 '빌리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 생필품을 보충하기 위해 험난한 원정에 나선 아리에티는 그만 잠들지 않은 쇼우와 마주치게 된다.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면 거처를 옮겨야 하는 철칙을 가진 소인족이지만 쇼우를 통해 좋은 인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리에티.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아리에티 가족에게 위험이 생각지 못한 위험이 찾아온다. 

 

 

등장인물

아리에티

14살이 된 아리에티는 밝고 모험심이 강하고 용감한 소녀이다. 각설탕을 구하는 위험한 여정에도 두려움 없이 도전하지만 쇼우에게 발각되어 도망친다. 다음 날 '잃어버린 물건'이라며 쇼우가 각설탕을 돌려주지만 함정이라며 거절한다. 하지만 까마귀의 습격으로부터 구해주는 쇼우를 보며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 풀어진다. 착한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엄마가 납치되고 아리에티는 쇼우에게 도움을 청한다. 다행히 쇼우의 도움으로 가족 모두 무사히 도망치지만 생존을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며 쇼우와 작별한다.

 

 

쇼우

어려서부터 심장이 약했다. 심장 수술을 앞두고 외할머니 집으로 요양을 오게 되는데 도착한 첫날 아리에티를 보게 된다. 늦은 밤, 낯선 곳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다 휴지를 빌리러 온 아리에티와 마주친다. 이미 할머니로부터 소인족에 대해 들어 알고 있던 쇼우는 놀라지 않았으나 아리에티는 힘들게 구한 각설탕마저 놓고 도망간다. 

자신을 경계하는 아리에티를 이해하고 강요하지 않으며 천천히 다가간다. 아리에티를 위해 증조할아버지가 준비해 놓았던 인형의 집을 선물하지만 그로 인해 아리에티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결국 아리에티 가족을 구해주지만 그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리에티와 작별을 고하며 늘 삶에 비관적이었던 쇼우는 살아가기를 결심한다. 

 

 

하루 아줌마

쇼우의 할머니 댁에서 일하는 가정부. 소인족에 대해 호의적인 쇼우네 가족들과는 달리 소인족이 남의 물건을 훔쳐가는 도둑이라고 생각한다. 소인족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가운데 쇼우가 아리아티에게 인형을 집을 선물하면서 남긴 흔적으로 그들 가족의 거처를 찾아낸다. 아리에티의 엄마를 병 속에 가두고 그들을 모조리 찾아내 박멸하려 한다. 

 

 

리뷰

이 영화에서의 소인족은 인간의 집 아래에 거주하며 사람들의 물건을 '빌려'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이 '빌린다'라는 것의 정의가 서로 다르게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빌린다는 것은 갚는다는 것을 전재로 하고 있다. 돈을 빌린다면 갚는 게 당연하고, 물건을 빌려다 쓰면 다시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소인족들은 '빌린다'라고 표현하지만 그들은 돌려주지 않는다. 애초에 돌려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엄연히 '절도'가 되는 것이 맞다. 영화 속에서 하루 아줌마는 매우 나쁜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그녀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물론 그 이후 그녀의 행동은 악역으로 묘사하기 걸맞게 과하고 잔인하긴 하다. 

 

사실 그들이 '빌리는'것은 휴지 한 장, 각설탕 한 조각이다.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휴지통에 넣기도 하는 정도의 양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절도'가 아닌 것일까? 동화 같은 소인족의 이야기와 인간과의 우정 등을 그리고 싶었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나는 그 양이 적든 많든 돌려줄 생각이 없이 가져가는 것은 빌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나 '너한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잖아'라는 이유로 남의 것을 쉽게 탐하려 들지 않을까? 이런 애니메이션도 마냥 아름답게 받아들이지 못할 나이가 되어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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